아재 셋의 페루 여행기 9편 - 다시 리마(Lima)로, 그리고 에필로그
아재 셋의 페루 여행기 9편 - 다시 리마(Lima)로, 그리고 에필로그
다시 리마로 돌아오는 길은 허전했습니다. 서쪽 태평양 연안으로는 해가 지며 석양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아재들은 피곤한 몸을 버스 의자에 깊숙히 묻은 채 꾸벅꾸벅 졸면서, 혹은 붉게 펼쳐진 석양을 음미하면서 페루 여행 역시 끝나감을 실감하고 있었습니다.
아재들의 일주일간 페루 여행은 뭐랄까 한여름의 꿈결같이 지나가고 만 느낌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간 느낌이었지만 페루 여행만큼 지금 회상해 보아도 하루하루 충만한 경험이 가득했던 여행 경험도 드문 것 같습니다. 마추픽추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아서 그랬던 점도 있었겠지만 마추픽추로 깊숙히 들어 가면 갈 수록 더욱 짙은 색으로 느껴졌던 잉카 문화의 자취는 아재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요소였다고나 할까요.
또 아재들은 페루에 이방인으로 와서 많은 사람들을 여행 중에 만났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페루 사람들이었고 그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전체적으로 이들은 뭐랄까 한국이 한창 개발 중이던 19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의 느낌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성실하고 몸놀림이 빠르고 활달하며 아재들 같은 이방인들에게도 친절했습니다.
리마로 돌아오는 길은 마침내 어둠이 깔렸고 창가의 풍경은 이제 완전히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리마와 쿠스코, 더 나아가서 마추픽추와의 사이에는 공간적 이외에 시간적 간격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재들은 이번 여행에서 타임 트래블(time travel)의 호사도 같이 누리고 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가 보고 싶은 도시 쿠스코(Cusco)
페루의 수도 리마는 현대 문명과 스페인 문화가 주류입니다. 돌아온 리마는 여전히 크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만 작고 허름하던 쿠스코가 왠지 모르게 기억이 많이 남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아재는 잉카 시대 주춧돌이 쌓여 있는, 황금빛의 조명으로 물들었던 쿠스코 골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생각을 하면 기분이 흐뭇해집니다.
게다가, 이곳은 아재들의 페루 여행 중에 가장 인심이 좋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마추픽추 행 잉카 레일 표를 예약할 때 빈 시간대를 찾아 친절하게 도와주던 예쁜 아가씨, 아재들의 이런저런 부탁에도 싫은 표정 하나 없이 택시 예약에 쿠스코 주변 안내를 밝게 해 주던 호스텔 카운터 아가씨, 한국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다며 우리랑 얘기를 한참 나누었던 알파카 모직물점 아가씨, 남은 먹을 거리 없느냐는 아재의 재촉에 마냐냐 마냐냐 하면서 내일 오라고 웃으시던 노점상 아주머니, 쿠스코 성당 안내를 차근히 잘 해줬던 학부생 청년 등등. 쿠스코에서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 이유였을까요. 쿠스코에 도착한 이후 부터는 아재의 마음도 한결 여유로와지고 편안해졌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페루에서는 팁을 줄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페루 여행 소개편에서 적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본 아재의 경우, 쿠스코에 도착하면서부터 팁을 남기기 시작하더니 그 이후로 팁의 액수가 많아졌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돈으로는 이렇게 나타나더라구요.
게다가, 쿠스코에서 고산병이라는 잠깐의 불편함은 아재의 몸도 천천히 여유있게 움직이도록 해 주었습니다. 여기에 안데스 산맥의 시원하고 깨끗한 기운까지 함께 하니 세속에 파묻혔던 아재들도 여기서는 한 차원 높아진 정신 세계를 자연히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 아쉬운 것은 쿠스코의 가난입니다. 쿠스코는 부유하지 못하다는 점이 눈으로도 경험으로도 느껴집니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 근처에는 십대 소녀들이 조그만 알파카 모양 열쇠고리를 팔고 있고 분지 모양의 쿠스코 외곽으로 차를 타고 올라가면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들이 다반사로 보입니다. 사람들의 표정 역시 밝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아침 일찍 학교를 가는 쿠스코 학생들의 모습입니다. 주위의 어른들은 가난 때문인지 대강대강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같이 교복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아침 일찍 학교를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뭐랄까 쿠스코 다음 세대의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 쿠스코와 페루에 투자를 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가난한 어른들이 자신들까지는 신경 못써도 이 정도 아이들 교육을 신경쓰는 곳이라면 이들이 좋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당연히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추픽추의 생동감
네. 페루여행에서는 마추픽추를 빼 놓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마추픽추의 생동감은 아마도 오랫동안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콜롬비아를 갔을 때도 느꼈던 점이지만, 안데스 산맥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산세가 워낙 크고 좋다 보니 안데스 산맥 이곳저곳에는 뭐랄까 좋은 장소들이 많습니다. 마추픽추는 이 중에서도 가장 좋은 장소 몇 군데 중의 하나에 위치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마추픽추는 산꼭대기에 넓게 펼쳐진 그 모습부터가 예사롭지 않고, 그 주위를 안데스 산맥의 높은 준봉들이 마치 호위하듯이 주욱 둘러싸고 있습니다.
왜 이런 곳에 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없어지고 말았을까요? 그 점이 무척 아쉽기는 합니다만 유적으로서의 마추픽추도 여전히 순례 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추픽추에 이르는 길은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쿠스코에서 적당히 교통편만 이용한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지요.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가야 하는 곳이 마추픽추인데 여행객의 그 노고만큼 멋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곳이 마추픽추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마추픽추를 건설한 잉카의 거석 문화도 빠질 수가 없겠지요. 현대 문명으로도 접근이 쉽지 않은 높은 산봉우리에 잉카인들은 어떻게 저렇게 거석을 짜맞추어 건물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도 최소한 수 백년 전에 말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잉카 문명의 미스터리에 빠지는 느낌도 있습니다만 세상에는 현대인들의 발달된 문명으로도 다 알 수 없는 역사와 유적이 있다는 점, 마추픽추를 보면서 배우는 교훈인 듯 싶습니다.
아마도 마추픽추를 방문할 기회가 혹시 있으면 그 때는 잉카 트레일을 따라 걸어서 마추픽추를 가 보고 싶습니다. 마추픽추까지 이르는 그 여정에 안데스 산맥은 무엇을 또 감추어 놓고 있을까요? 그 신비를 가능하다면 몸으로 걸어가면서 한껏 느껴보고 싶다는 상상을 해 봅니다.
잉카와 스페인 문화의 블렌딩(blending)
본 아재 여행 경험에서 볼 때 페루와 콜롬비아의 큰 차이점은 토착 문화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콜롬비아는 유럽 국가와 같은 느낌이고 아마도 스페인도 이럴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페루는 잉카 문화가 어딜가나 섞여 있고 특히 쿠스코 지방은 잉카문화의 영향이 아주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페루의 잉카 문화와 스페인 문화는 서로 잘 섞여 있는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이분법적 관계로 이 두 문화를 보았는데요, 여행을 하면 할 수록 페루에는 이 두 문화가 잘 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쿠스코 성당의 성화(聖畵)에서 볼 수 있듯이, 최후의 만찬 메뉴에 이곳 특산물인 꾸이(Cuy) 요리가 올라와 있습니다. 또, 이 성화나 성당의 미려한 장식물들은 개종한 잉카인들이 전부 만들었다고 합니다. 페루의 역사를 공부해봐야 자세한 것을 알 수 있겠지만 여행객인 아재의 눈에는 이런 두 문화의 섞임(blending)이 시간이 갈수록 괜찮아 보였습니다.
세계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않은 아재의 좁은 경험으로는 미지수가 많습니다만 외국 다른 나라에 이 만큼 두 문화가 잘 섞인 곳은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식민지 경험이 있는 우리네 역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스페인의 남미 강점을 좋게 볼 수 없겠지요. 하지만, 페루의 경우는 이러한 스페인의 지배가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시각으로도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이러한 페루의 전통이 앞으로도 세계적으로 잘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기대를 개인적으로 해 봅니다.
다시 리마로, 그리고 집으로
리마로 돌아와 일박(一泊)을 한 아재들은 그 다음 날 간단히 반나절 리마 시내구경을 했습니다. 이곳도 쿠스코나 다른 곳 처럼 시청 앞 광장의 이름이 아르마스 광장, Plaza de Armas였습니다. 여행 중에 배운 지식 덕분에 광장 이름이 눈에 띄게 된 셈입니다.
아재들이 긴 여정에 지쳤기 때문일까요. 이 날은 아르마스 광장 외에는 사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랫만에 영양보충을 한다고 들어간 스테이크 집 맞은 편에 있던 이름 모를 잉카의 유적 사진이 하나 남아 있네요. 약소하나마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마치며
아재들은 이제 다음을 기약하면서 각각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페루 여행 덕분에 아재들, 6개월 뒤 콜롬비아 여행을 같이 가게 되었네요. 이렇게 여행에 재미를 붙인 아재들, 저는 이번에 사정상 빠졌습니다만 시즌 3로 하와이 여행도 바로 저번 주에 다녀왔습니다. 아마 다음번 시즌 4는 인도네시아 발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저도 콜롬비아로 시작한 여행기 시리즈 작성을 페루 편까지 이어서 이제 여기서 마무리를 짓게 되네요. 감개가 무량하다는 표현을 이 때 써야 하는 것 같습니다. :)
그 동안 아재들의 여행기를 꾸준히 읽어 와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구요. 일단은 여행기를 여기서 마무리 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다양한 주제로 포스팅을 해 볼 예정입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